가톨릭 성직자들 묘지 입구에는 라틴어 “Hodie Mihi, Cras Tibi(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해석하자면 “오늘은 내가, 내일은 당신이”라는 뜻이다. 수수께끼처럼 들리겠지만, 이 말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격언이다. 오늘은 내게 죽음이 드리워져 이렇게 누워 있지만 내일은 바로 당신의 차례라는 것이다.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여기 ‘기억하고’ 싶은 죽음들, 하지만 죽음조차 그 예술혼을 사그라뜨릴 수 없어 시공간을 초월해 ‘기억되는’ 화가들이 있다.
그림을 다리 삼아 세상을 통과해온 미술 저술가, 이유리는 예술가들이 남긴 빼어난 예술작품, 그중에서도 유독 ‘화가의 마지막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다. 생의 끝, 가장 아름답고 치열한 시간에 화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그림 한 점엔 쉬이 껴안지 못할 삶의 진실이 녹아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실제로 화가의 마지막 그림 안에는 죽음이 임박한 순간, 그들이 무얼 예감했고 무얼 목격했으며 무슨 메시지를 최후로 남기고 싶었는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속설에 따르면, 백조는 평생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아름답고 구슬픈 울음을 뱉는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백조의 노래’는 보통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백조들이 토해낸 마지막 울음 같은 작품들을 정성스럽게 선별하고 묶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예술가들이 남긴 마지막 명작집’이라고 할 만하다.
저자소개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인일보 사회부를 거쳐 현재 미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글쟁이의 삶을 살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미술 교과서나 신문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오려내어 스크랩하던 소녀였다. 영어 공부를 하러 간 영국에서, 영어 공부 대신 런던에 있는 갤러리란 갤러리는 모조리 훑고 다녔고 결국 영어 대신 머릿속에 방대한 미술지식을 안고서 돌아왔다. “세상을 피하는 데 예술보다 확실한 길은 없다. 또 세상과 관련을 맺는 데도 예술처럼 적당한 길은 없다”라는 괴테의 말에 동감하며 ‘예술작품’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목차
여는 글_생의 위대한 비밀을 품은 열아홉 화가의 마지막 명작
1 사랑, 그토록 간절했던 그립고 그리워서, 그리다_이중섭 서로의 전부를 쥐어준 사랑_잔 에뷔테른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죽음이 삶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날_에곤 실레 환희처럼 슬픔처럼, 이별_에드워드 호퍼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_나혜석
2 부상당한 희망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_빈센트 반 고흐 끝끝내 생명을 얘기하려 한 사람_프리다 칼로 이 주검의 행렬을 멈춰라_케테 콜비츠 내 그림만은 죽이지 말아주게_펠릭스 누스바움
3 예민한 영혼에 드리워진 덫 피지 못한 원초의 세계_폴 고갱 불행한 날들에 찾아온 뜻밖의 소녀_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비극에 무감한 사람들을 깨우다_마크 로스코 백인에게 ‘발견’되고, 백인에게 ‘소진’된_장 미셸 바스키아 혼돈이라니, 빌어먹을!_잭슨 폴록
4 화려한 성공, 뜻밖의 최후 경멸과 동정이 뒤섞인 자화상_카라바조 돌아온 탕자의 고해성사_렘브란트 혼돈의 시대에 당겨진 비극의 활시위_보티첼리 돌고 돌아 신 앞에 선 르네상스의 천재_미켈란젤로